조선 후기의 실학자 정약용(丁若鏞)이 지은 자신의 묘지명(墓誌銘).접기/펼치기내용유배에서 돌아온지 4년 뒤 회갑때 지나온 파란의 삶을 회고하며 지었다. 무덤에 넣는 소략한 광중본(壙中本)과 문집에 실을 상세한 집중본(集中本) 두 가지가 있다. 집중본을 중심으로 내용을 개략하면 다음과 같다.열수(洌水) 정용(丁鏞)의 묘이다. 본 이름은 약용(若鏞), 자는 미용(美庸), 또 다른 자는 송보(頌甫), 호는 사암(俟菴), 당호는 여유당(與猶堂)인데 ‘겨울 내를 건너듯, 이웃을 두려워하듯’ 이란 뜻에서 지었다. 어려서 영특해 문자를 알았고, 10세때부터 과예(科藝)를 공부하기 시작했으며, 집에 계신 아버지로부터 경사(經史) 고문(古文)을 배우고 시율(詩律)을 잘 지었다.15세에 서울에서 이익(李瀷) 선생의 글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