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안동에 있는 육군 36사단 신병교육대에 입대한 날이
1974년 10월 8일. 그날이 지금도 내 눈 앞에 선하다.
달성공원 건너편에서 머리도 깎고 점심먹고 안동가는 버스를
탄다. 거기서 또 훈련소가는 차를 타고 내려서 입소를 하는데
인원확인 하고나서 입구에서 부터 오리걸음을 하면서 부대로
간다. 36사단 신병교육대 6중대 2소대에 배치되었다
그날 저녁 석식을 하려는데 소금물로 미역국을 끓여 주는데
도저히 못 먹겠는지라 그날 석식은 대부분이 안 하였어라.
다음날 아침 조식을 주는데 모두들 말끔히 식사를 한다.
밖에서 먹으라 하면 못 먹겠지만 하룻밤 굼겼드니 다들
없어서 야단이었어라. 식사시간을 딱 3분 주는데 누군가
배고픈지 식사끝. 했는데 한 술 더 먹으려다가 혼난적이
있었다.그때는 배가 너무 고파 :식사당번 하는 날은 배 터지는
날:이라고들 했었다. 밥통은 둘이서 들고오고 국통은 혼자서
들고 오는데 上衣주머니엔 밥숟가락을 넣어두지만 밥통을 들고
오면서 한 손으론 밥을 집어 입에 마구 넣었었다.
초가을 날씨라 內衣를 입었는데 국통을 들고오는 날엔 내의를
팔에 걷어올리고 한 손으로 닭고기를 건져서 마구 먹으면서
내무반으로 오곤했었다 누구나 다 배 고픈게 아주 고역이었다.
한번은 얼굴에 비누칠하고 세수하는데 누군가 세면대를 몰래가져가
그날밤 점호시간 전에 옆 내무반에 가서 그 내무반원인양 속이고
세면대를 가져온 일도 있었다. 숫자만 맞으면 되는 곳이 군대였다.
국기하강식땐 온몸에 비누칠 한뒤 씻으려는데 국기하강식 한다는
스피커 소리가 나면 벗은 몸 그 상태로 부동자세를 취했었다.
화장실 이용때도 모자는 꼭 벗어 쥐고 앉아 있어야만 안전하지
모자 쓴 자세로 앉아 있으면 누가 재빨리 벗겨 달아나던 시절이었다.
속옷도 빨아서 나무가지 등에 늘어서 말리는데 이를 지켜야만 했었다.
누군가 벗겨가면 모자란 숫자를 채워 놓아야 만 했었다.
훈련소 6주훈련을 마치고 후반기교육은 부산 육군병기학교에서
13주간 교육받는데 (74년11월21일~75년 2월 28일) 그곳에 가자마자
내무반장이란 이(고참일병)가 여기는 육군병신학교라고 겁을 준다
매일 밤, 커다란 몽둥이를 잡고 마치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 서 있는
이순신장군 동상 모습같다.이곳은 또 사다리를 타고 오르내리는
복층구조라 선착순집합이라 고함을 치면 맨날 2층에 있는 이들은
늦게 집합하여 기합을 받는다. 그때 내가 고향집 부모님께 서신을
보낼때 한자표기를 많이 하는것을 파악했는지 2월 초순 어느날.
중대장이 나를 부르드니 국가에서 국민투표를 하는데 나보고
한자표기를 해서 각 가정에 서신을 보내야하는데 오늘 밤 중으로
200여매를 좀 할 수 있느냐 해서 복사용 먹지를 주면 하겠다고 하고
그날 밤 한자를 표기해서 다 해서 건넨다.(例:國家를,家族에게,國民投票라)
그때 내보고 :구 이병,자네 소원이 무엇인가? 하고 묻기에 난 곧장
저를 의무실에 입실 좀 시켜주십시요.거기서 숙식하면서 제 동기(640기)
들과 함께 학과장에 출,퇴근하도록 좀 도와주십시요 . 라고 한다
지금 내무반에서는 매일 밤 기합에 배고픈게 제일 큰 고역이었다.
이걸 피하고 싶었다. 다행히 내 소원 들어준다
그날 저녁에 바로 내 소원인 의무실에 입실하고는 밥을 실컷 먹는다
기합도 없고 밖에서의 동초(動哨)근무도 안 하고 다만 내무반 안에서
불침번(不寢番)만 돌아가면서 하니 이건 완전 別天地였어라.
그러나 2주가 다 되어가는데 1주 더 연장을 하면 다음 기수하고
수료한다기에 그만 퇴실하여 본 내무반으로 와서 1주 교육 다 받고
마침내 13주교육을 무사히 마칠수 있었다
이곳에 있으면서 추억은 내(63041848) 보다 군번이 1번 빠른 (63041847)
현풍 성하리 출신 이 세엽(李世燁)군 이야기이다.
이 친구는 입교초기에 배가 넘 고파서 더 이상 여기 못 있겠다면서
탈영의사를 내 비친 일이 있었다 . 그래서 내가 의무실에 입실하고나서
친구에게 매일 밤마다 저기 소나무 밑으로 숫가락만 가지고 온나
내 밥 남겨 갖고 와서 줄께 하니 나를 구세주 만난 양 좋아라 하면서
밤마다 어두울때 남이 안 보게 소나무 아래에서 밥을 미친듯이 떠 먹고는
가기싫은 내무반으로 가던일이 생각난다. 이 친구 그때 내 도움 없었으면
거기서 교육 다 받았을까 의문이다
교육 후 이 친구는 부산역에서 헤어질때 평택방공포대인가 간다고 했는데
그후론 소식두절이다,. 이 친구 나(대구 달성 다사 세천리)와 같은
대구 달성군이라 친구 찾으려고 고향마을 현풍 성하리까지 찾아 갔으나
알 수가 없었다. 무척 아쉽다.친구 세엽씨 자넨 ,날 잊지는 않겠지.
어디에서 살던지 늘 몸 건강하여라. 한 번 만나 회포 풀면 좋겠는데.
追記) 50년이 더 지난 군대 훈련소 이야기를 더 늦기전에 잊어버리지
않기위해 기억을 더듬어 한 번 써 보았다
2025년 2월 21일 金 10:15분 달성 다사 세천리 출신 구 본훈 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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