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용한 글 ,문장 97

忠愍公 林慶業 장군의 秋蓮刀, 龍泉劍에 새겨진 銘文(월간조선 2016.6월호)

秋蓮刀銘文 時呼時否在來(시호시래부재래):시절이여, 때가오면 다시 오지 않나니 一生一死都在筵(일생일사도재연); 한번나고 한번죽는게 모두여기 있노라. 平生丈夫報國心(평생장부보국심); 대장부 한평생 나라위한 마음뿐이니 三尺秋蓮磨十年(삼척추련마십년); 석자 추련검을 십년동..

嗚呼, 寡人思悼世子之子也. (서기 1776.음3.10. 정조즉위년)

오호, 과인사도세자지자야. 아,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조선 22대 왕인 정조(1752ㅡ1800, 재위:1776ㅡ1800))가 할아버지인 영조(1694.9.20ㅡ1776.3.5.재위 52년. 83세)의 뒤를이어 왕위에 오르면서 즉위한 그날 신하들에게 내린 첫 윤음이 바로 이 한마디였었다. 조선 21대 왕 영조에게는 정성왕후(1692ㅡ1757)와 정순왕후(1745ㅡ1805)왕비 2명과 정빈이씨(1694ㅡ1721)영빈이씨(1696ㅡ1764) 귀인조씨,후궁문씨 등 후궁4명이 있었다. 왕비에게서는 후사가 없었고 후궁에게서만 2남7녀를 두었다. 정빈이씨에게서 첫아들 효장세자가 났는데 (1719ㅡ 1728) 10세로 요절하고 영빈이씨가 둘째아들 사도세자를 낳는다 (1735.1.21ㅡ1762.윤 5.21) 영조..

1300년 동안 도굴 막아낸 측천무후 무덤의 비밀

중국 유일의 여자황제 측천무후 (624ㅡ705)의 감춰진 이야기 측천무후라, 그녀는 아주 음란하였으나 또한 위대한 통치자엿다. 그녀는 말단 궁녀에서 출발, 후궁을 거쳐 황후가되고 마지막엔 황제가 되었다. 또 남편(고종)의 나라 唐을없애고 周를 세웠다 (690년)우리의 백제, 고구려가 멸망한 것도 그녀의 집권시기였다. 백제의 패장 흑치상지를 중국에서 받아준 것도 그녀이다. 그녀는 도읍지를 서안에서 낙양으로 옮긴다. 또 자신과 남편의 무덤입지 선정에서 탁월함을 보여준다. 당대 최고의 풍수사 李順豊을 잘 활용하여 이들이 택한 땅은 여인이 대지위에 누워 있는 형국의 吉地엿다 . 무덤이 자리하는 북쪽산이 머리모양이고, 남쪽에 좌.우로 봉긋하게 솟은 산이 여인의 젖가슴 형상이었다. 그녀는 평지에 棺.槨을 놓고 흙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