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주이씨 家門談
성주이씨 중시조인 이장경이 약관일때 성주군수로 부임한
합천이씨 이약이 이장경의 재능을 간파하고 사위로 삼는다.
이장경은 생전에 상호장과 안일호장을 지냈다
아들 5형제를 두었는데 다섯 모두 다 과거에 급제를 한다
첫째 백년(百年)은 밀직사사를 지내고
둘째 천년(千年)은 참지정사를 "
셋째 만년(萬年)은 문하시중(정승)을 "
넷째 억년(億年)은 개성유수 를 "
다섯째 조년(兆年)은 대제학을 지낸다.
이장경은 다섯아들의 출세로 삼중대광 문하죄시중,홍안부원군에
추증이 되고 다시 또 상호군에 추증이 되고 원나라 황제로 부터
농서군(君)에 추증이 된다.
첫째 백년의 손자 인기는 평양부윤이 되고
증손자 숭인은 목은 이색의 제자로 밀직제학을 지낸다.
둘째 아들 千年은 조선개국공신 1등의 첫번째로 이름을 올린
배극렴 정승의 외조부가 된다. 삼봉.정도전은 네번째로 이름올린다.
셋째 萬年의 고손 지활은 조선조에서 이조판서를 지낸다.
다섯째 兆年은 고교 국어교과서에 시조부문에 이름을 올린
梨花에 月白하고 銀漢이 三庚일제:::
一枝 春心을 子規야 알랴마는
多情도 病인양하야 잠못들어 하노라. 라는 유명시조를 남기신다.
조년의 아들 포는 광정대부이고 손자는 인임, 인민,인복,인림,인데
이인임은 고려 32대 우왕을 섭정하고 문하시중(정승)을 하고
인복은 안홍부원군에 봉해지고
인민의 아들 직은 조선조에서 대제학, 이조판서, 영의정,에 이르고
시호는 문충이고 성산부원군이고
인립의 아들 濟,는 조선 태조(경순공주 夫) 사위가 되고,興安君이고
2자 潑은 병조판서를 한다.
조년의 3자 인복의 후손으로 영은 중국에 귀화를 하여 그의 5대손
李如松은 임진왜란시 명나라 원군의 총지휘자가 되어 평양성을
탈환하고 왜란이 끝난뒤 중국으로 돌아간다
명나라가 망하자 이여송의 3자 이문충과 손자 이응조는 조상의 모국인
조선으로 건너 와서 정착하며 관향을 농서이씨로 하다가
성주이씨로 통합을 하였다고 전해진다.
2. 반남박씨 가문
이 가문 중흥조인 文康公 冶川 朴紹는 서울에서 태어나 어릴때부터
외가인 합천군 묘산면 화양동에서 살면서 외조부인 현감,윤자선과
한훤당 김굉필에게 수학한다
1519년 식년문과에 장원급제를 한다.
기묘사화때 파직 당한 후 합천으로 귀향 후 생을 마친다.
아들 5형제와 손자 17명을 두어 5應17東이라 부른다.
첫째 應川은 한성부윤을 지내고 백사 이항복이 묘비문을 撰한다
둘째 應順은 딸이 선조비 (의인왕후 박씨)가 된다.
또 반성부원군에 봉해지고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고
묘비문은 율곡 이이가 撰한다.
셋째 應南은 문과급제후 호당에 들고 대사헌, 증 이조판서이다.
넷째 應福은 문과 후 대사헌 예조참판, 증 영의정이다.
다섯째 應寅은 돈녕부 도정을 지냈다.
17명 손자 모두가 벼슬을 한다.
1子 응천의 아들 동선은 판서, 좌참찬,을 지내고
4子 應福의 아들 동량은 형조판서를 지낸다.
현손 世采는 동국18현으로 문묘에 배향되었고
현손 世堂은 부제학과 공조판서를 지낸다.
후손으로 유명인은 박동량,박태보,박지원 (열하일기)
고종초 우의정을 지낸 박규수,개화파 박영효가 있다.
문강공 박소의 묘소는 합천 화양리 朴山에 있으며
신도비는천연기념물 289호로 영의정 박순이 찬하고
당대 최고의 명필 한석봉의 글씨이다. -끝-
淡水 誌 52집 176~179쪽에서 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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