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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진 송씨 여인에게 효를 묻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孝효를 인간이 지녀야 할 최고의가치이자, 德덕의 근본으로 여겨왔다.이 효 사상은 전통 미풍양속으로서 오랜 세월 동안우리의 삶 속에 녹아  그 맥이 이어져 왔다.그러나 오늘날 과학 기술 문명의 발달과 핵가족화로효의 개념은 허물어지고 이를 경시하는 풍조가 나타나는 등 효 사상은 이미 땅에 떨어졌다.이로 인하여 우리의 정신적 문화적 황폐는 치유할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닫고 있으며 효가 무너진 자리에 전통은 매몰되고 퇴폐풍조가 만연하고 있다.이것이 우리의 민낯이다.이러한 각박한 세태 속에서도 7년의 긴 세월을 치매에 걸린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봉양한 이가 있다.그 주인공은은진 송씨 일가의 송 희자(69세 서울)  여사이다.그 녀가 10세 때에 아버지는 2녀 1남을 남겨둔 채 지병으로이 세상과 ..

김호연재

첫째, 이 연구는 17세기 김성달(1642-1696, 자 伯謙, 호 靑洲)과 이옥재(1643-1691) 부부가 혼인 생활을 통하여 생산해 낸 부부수창 한시작품 248수의 내용을 분석하여, 우리나라 고전문학사에서 이 부부가 이루어낸 부부수창시의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창출해 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김성달 부부와 자녀는 17세기와 18세기를 거치면서 우리나라 문학사에서 일찍이 없었던 이른바 ‘전 가족이 문인’이었던 ‘가족문학사’를 선구적으로 이끌어 낸 집안이다. 󰡔안동세고󰡕 소재 한시는 모두 부부가 수창하거나 동일 주제를 놓고 함께 읊은 시, 그리고 아내 사후 김성달이 아내를 그리며 읊은 시들이다. 전통시대 한 남성이 아내에게 주거나 아내를 대상으로 읊은 시로는 명실 공히 최대의 작품량이고, 학계에 잘 ..

카테고리 없음 2024.07.27

호연재 글, 발굴한 문희순교수의 바램이야기

갈산면 와리 김성달 가의 ‘살아있는 가족문학사’ 연구 문희순 교수“생가 터에 가족 시비(詩碑) 건립해주길”  문희순(49) 충남대학교 외래교수는 뜨겁다.단 1분이라도 아껴 이들의 이야기를 꼭 전해주고 말겠다고각오한 사람처럼 강의 내내 들뜨고 흥분했다.문 교수가 이처럼 들뜨고 흥분해 들려주고 싶은 이들은 과연 누굴까.‘홍성의 역사와 문화 강좌’에서 문 교수는 이들 부부와 그 자녀들의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홍성 아니 홍주의 역사 속에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도 모자랄 정도로문학사의 도도한 물결을 이루고 있는 이들은 바로 김성달·이옥재 부부와그들의 자녀들이다. 갈산면 오두리 342번지는 바로 안동김씨(갈뫼김씨라고도 함) 김성달 가족의 사랑과 꿈이 서린 곳이다.그들 가족은 부부와 부실 울산 이씨, 13명의 자녀 모두..

카테고리 없음 2024.07.27

김성달, 이옥재,부부의 안동세고

홍성 출신 김성달·이옥재 부부의 『안동세고(安東世稿)』충남 홍성군 갈산면 오두리는, 조선 후기 부부시인으로 유명한 김성달·이옥재 부부가 살았던 마을이다. 오두리(鼇頭里)는 마을 모습이 자라머리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지금은 서산 A·B 지구 방조제 조성으로 인해 마을 앞이 육지로 변했다. 하지만 옛 시절에는 마을 턱밑까지 바닷물이 넘실거리던 서해 천수만의 아름다운 어촌이었다.김성달(金盛達, 1642~1696) 집안이 오두리에 정착한 것은, 안동김씨 선조인 수북(水北) 김광현(金光炫, 1584~1647) 때부터다. 김광현은 병자호란 때 아버지 김상용이 강화도에서 순절하자(1637년 1월), 삼년상을 마치고 홍성 갈산 오두리로 이주하여 정착했다. 김광현의 손자 김성달은 서울에서 태어나 과거에도 ..

카테고리 없음 2024.07.27

김호연재

김성달 가족문학사’ 기념하는 가족시비 건립 필요하다  첫 번째 기고 글에서 ‘홍성 문화예술인물’ 선양 또는 기념사업의 방향을 제시하고자 했다. 구체적으로 먼저 문학 분야에서 김성달 가의 가족문학사를 소개하고, ‘선양 또는 기념사업의 방향은 어찌해야 할지, 어떤 것이 있을까’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조선후기 문학평론가 이규경은 《시가점등》 ‘내가수증연주록’에서 김성달·이옥재 부부, 부실 울산 이씨와 열 명의 자녀 등 전 가족의 가족문학사를 논하면서, “책에 수록된 규방에서 읊은 시는, 압록강 동쪽 고금에 일찍이 없었던 일”이라고 이 가족의 놀라운 문학적 기량과 시의 경지를 평가했다. 이 집안의 문학사는 한마디로 “압록강 동쪽 우리나라 고금의 역사에서 일찍이 없었던 일”이라는 것이다. 이 김성달 가족과 후손들..

카테고리 없음 2024.07.27

김호연재

조선의 여성 문인, 김호연재(金浩然齋)의 유고시집김호연재(金浩然齋, 1681~1722)는 조선 중기에 활동했던 여성문인이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은, 충남 홍성군 갈산면 오두리 바닷가다. 지금은 마을 주변이 육지로 변했지만, 옛날에는 바닷물이 출렁이던 아름다운 어촌마을이었다. 이곳에서 유복한 유년시절을 보내다가 , 열여덟 살 때 대전 송촌(宋村)의 은진 송씨 가문으로 출가했다. 호연재(浩然齋)는 이름이 아니고 호(號)다. 이처럼 이름이 아니고 호가 알려진 데에는 당시 조선사회의 가부장적인 분위기와 관련이 깊다. 17세기 조선의 여성들은 이름이 불려 지지 않았으며, 결혼을 하면 누구의 배(配, 부인)로 기록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이 때문에 양반가의 여성들은 자신이 거처하던 안채의 당호를 자신의..

카테고리 없음 2024.07.27

호연재

부부가 일상생활 속에서의 모습을 시로 표현하고 부부시집으로 엮어 낸 사례는 金盛達(1642-1696)ㆍ李玉齋(1643-1690) 부부의 安東世稿가 유일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옥재의 경우는 개인문집으로 엮어질 만큼의 작품 분량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각각의 개인 문집이 아닌 부부의 시집으로 묶이었다. 이는 이옥재와 김성달의 시가 부부생활 속에서 수창되었고, 작품의 양이 부부의 시집으로 묶일 만큼 방대하기 때문이다. 김성달ㆍ이옥재 부부의 시집 안동세고 수록 한시작품은 대부분 오두리에서의 삶이 표현된 것이다. 오두리는 충남 홍성 갈산에 있는 어촌마을이다. 시 속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금오산ㆍ북정ㆍ해수ㆍ해풍ㆍ어주ㆍ어옹ㆍ죽원ㆍ죽서ㆍ해상촌ㆍ동원ㆍ촌벽ㆍ강촌ㆍ강루ㆍ오주ㆍ오두’ 등이 오두리의 어촌 풍경을 가늠하게 하는..

카테고리 없음 2024.07.27

김성달의 가족 10인 모두 시인으로 시집 안동세고

조선후기 김성달 가족10명 모두 시인이었다.. 시집 '안동세고''연주록'발굴2007. 3. 27. 19:15번역 설정글씨크기 조절하기인쇄하기조선시대 한 집안에서 2대에 걸쳐 활동한 시인 10명의 작품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부부 시집과 자녀들의 시집이 가계(家系)와 함께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다.청주(靑洲) 김성달(1642∼1696)과 부인 연안 이씨(1643∼1690)의 시집 '안동세고(安東世稿·사진)'와 그 자녀들의 시를 담은 부록 성격의 '연주록(聯珠錄)'에 수록된 한시 421수가 그것이다.이 책을 발굴한 한문학자 문희순(44·여·배재대 인문과학연구소 연구교수) 박사는 27일 "현장답사 결과 김성달의 다섯 아들 중 독립운동가 김좌진의 8대 조상이 있다는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다"고 밝혔다. 조선후기의 가..

카테고리 없음 2024.07.27

小大軒 浩然齋의 한시 240수

첫째, 남편 김성달이 부인에게 준 177수라는 적지 않은양의 한시를 분석,부부사랑 한시의 미적 특질을 연구하고자 하였다.김성달은 ․ ․ ․ 등등의 시제로부인 이옥재에게 시를 주었다. 부부가 함께 읊은 경우에는 ․ , 부부 중 먼저 시를 지어 건넨 사람은 ․ ․ , 원시에 차운한 사람은 이라는 시제로실려 있다. 김성달은 벼슬살이나 기타 여러 사연으로 홍성 갈산에 있는가족을 떠나 있을 때, 늘 가족을 그리워하며 잠못 이루고,그 정감을 한시라는 매개물을 통하여 표출하였다. 섬세하고, 인자하며,시를 사랑한 문학인이었다. 한 번은 부부가 ‘시 내기 바둑’을 두었다.바둑에서 진 이옥재는 약속에 따라 35 수의 시를 지어야만 했다.물론 김성달이 지은 원작 시에 차운하는 형식이었다.이 부부는 한가로울 때 바둑 ..

카테고리 없음 2024.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