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汝果我子也이야기

한문역사 2013. 7. 13. 13:18

      汝果我子也 이야기

 

이야기는 회재 이언적 선생(1491ㅡ1553)이 18세때 혼인한

박씨부인과의 이야기입니다.

선생이 부인과의 사이에 자식이 없는지라 선생이 25세때

경주부의 朱學訓導를 하고 있을때

石씨성을 가진 官婢와 사랑을 나누었는데 이때 임신한 몸이었는데도

이를 모르는 조윤손이라는 양반이 석씨가 마음에 들어 小室로 들이고

일곱달만에 사내아이가 태어남에 조씨는 이 아이에게

玉缺이란 이름을 지어주었다 .

옥결이 장성 하니 그는 집과 전답 노비를 물려주었다

이언적은 어느날 조윤손을 찾아가 얘기하기를 

:여인이야 소실로 삼았다 하더라도 아들은 돌려주는게 옳지않은지요:

했다고한다.1547년 조윤손은 죽고난뒤 옥결은 장례를 치루고나서

生母가 말하길,너의 生父가 사실은 회재선생이라 알려준다.

그는 곧장 회재선생의 부인 박씨를 찾아갔다 .

박씨부인은 울면서 선생이 士禍로 평안도 강계로 귀양을 갔으니

그곳으로 가보라고 하였다

강계에서 옥결은 生父 회재를 만나 가르침도 받고

생부로부터 全仁 이라는 이름을 받는다

이때 회재가 말한게 汝果我子也 즉,너는 과연 내 아들이다 .

즉 평생 학문을 통해 낳은 자식하나가 바로 온전한 사랑 [全仁}이리라 .

그 후 전인은 천첩의 소생이라 벼슬은 꿈도 못꾸었으나

나중에 면천免賤을 받아 관직에 출사를한다.

(명종실록16권,명종9년1월19일條)

.정3품 예빈시정 벼슬하고 號를 잠계(潛溪)  ,

즉, 땅밑을 흐르는 시냇물 이란 뜻이란다

이후 회재는 從弟 의아들 應仁을 養子로 삼고 宗宅을 지키라하고

唯一한 血子이자 庶子인 全仁 에게는 玉山書院을 지키도록

분배했다고 합니다

 선생은 강계에서 58세때 老母의 訃音 을 한달이나 늦게 서야 전해듣고

1553년 유배지에서 돌아가셨다 합니다

선생의 묘소는 포항 남구 연일읍 달천리에 모셔져 있습니다

회재는 외가인 양동마을 서백당에서 태어난다.

외조부가 계림군 손소(적개공신 2등)이고 ,외숙은 손중돈이다.

회재 이언적선생은 1569년 종묘의 명종묘정에 배향되고

1610년 문묘에 종사되었고 경주 옥산서원에 제향되엇고 시호는 文元이다

동방5현이자 동국18현으로 문묘에 명종의 배향공신으로  종묘에도 모셔진다.

문묘와 종묘에 모두 이름을 올린이는

이언적,이황, 이이 ,김집,송시열,박세채,6인뿐이다.

 이글은 영남일보 2011. 7 . 6 . 수요일 인물열전에서 옮겨적다 

    구본훈 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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