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외 인용문 2집

고통스러웠던 어머니의 한 평생

한문역사 2024. 7. 26. 16:10

얼마  전 , 어머니가 돌아가셔  이제는 부모가 없는 고아가 되어버렸다.

오래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는 평생을 농사를 지으며 고생만 하시다가 

위암으로 돌아가셔 기억에서 점차 사라져 갔다.

94세 까지 장수하신 어머니도 농부의 아내로 여섯 남매의 어머니로

숱한 고생을 하시다가 결국은 돌아가셨다.

60년대 보릿고개 시절에  쌀밥은 구경하기 힘들었다.

보리와 쌀의 비율이 7:3인 꽁보리밥에 반찬이래야 짜게 담근 김치와

양파,마늘,오이,풋고추 등 채소가 전부였다.

5일장이 서면 칼치 한 두마리  사 와 구워서 한 덩이 맛 보는것이

유일한 고기반찬이었다. 쇠고기는 가족중에 생일이 있을때만 먹을수

있었는데 고깃덩어리는 조금만 있고 국물만 가득 담아 먹기 일쑤엿다.

그만큼 영양실조 상태였던 시절이었다. 

당시 어머니는 경제권이  전혀 없었다.아버지가 물건을 사 주거나

돈을 타서 썼으니 얼마나 답답하고 마음이 아팠겠는가?

자식에게 사 주고 싶어도 수중에 돈이없고 ,아버지께 일일이 용돈을

타 썼으니 그 심정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이제 자녀들이 다 분가해 어머니께 나름대로 효도하지만 , 어머니가 

우리를 키우신  고생에 비하면 어림도 없다.

그런 어머니께서 몇 해 전 갑작스레고관절 병으로 돌아가셔 생전의

모습이 눈에 선하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이 가슴에 

사무친다.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만 해도 기억력도 좋고 정신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밤에 주무시다가  일어나 소변보러 가던 중 

방향감각을 잃고 넘어졌다. 결국 고관절에 문제가 생겼고 , 4년정도 

입원끝에 극복하지 못하고 94세를 일기로 돌아가버렸다.

병원에 있는동안 깁스를 한 자리가 불편하고 ,통증이 심해 고통이

많았다.더구나 식사까지 제대로 하지 못해  기력이 빠져 돌아가

더욱 서글프고 애석했다.아마 자식들 고생시키기 싫어 고의적으로

식사를 거르면서 빨리 가려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누구 못지않게 너무나 착하고 선하게 살아 온 어머니였다 .

마지막에 그런 몹쓸 병에 고통스럽게 생명을 앗아갔는지 생각하면 

신이 한없이 밉고 원망스럽다. 내가 보아 온 어머니는 한 평생 남에게

싫은 소리나 폐를 끼치는 행동을 전혀 하지않으셨다.

늘 인자하고 선하고 착하게만 살아 주위 사람들이 무골호인이라 했다.

크게 가진 재산이나 명예는 없어도 노인들끼리 만나면 다정다감하며 

매사 일에 앞장섰다. 회식을 하면 돈이 별로 없어도 먼저 계산하고 

그러면서도 티를 내거나 자랑하지 않으셨다.

평소에 용돈을 아껴 명절이나 방학때에 손주들이 오면 꼬깃꼬깃 

접어두었던 돈을 아낌없이 꺼내 주시곤 했었다.

우리 6남매 모두 공부시키고 결혼까지 시켜주신 은혜, 정말 어떻게

갚을까 망설여졌는데 갑작스레  돌아가시는 바람에 효도할 기회도

없으니 얼마나 원통하고 한스러운가.

해마다 기일이 되면 온 집안 식구들이 모여 제사를 지내며 

어머니를 추모하러 산소에 간다.

제사때 차렸던 음식을 어머니 영전에 놓고 절하며 북받쳐오르는 

눈물을 맘껏 흘린다. 정말 부모님이 살아계실때 효도를 다 하라는 

옛말씀이 맞다  생전에 잘 해드리지 못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

평소 너무나 자식들에게 다정다감하고 따뜻한 정을 주고 가셨기에 

더 기억이 새롭다.

이제는 부모님께 효도 할 수 없는것이 더욱 괴롭고 마음이 아프다.

비록 육신은 돌아가셨지만 부모님의 자태와 정신만은 가족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기억되고 살아 있을 것이다.(죽전동, 우 윤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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